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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쏟아지는 자작나무 길을 달리다

기사승인 2020.03.06  13: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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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국이 달린 유라시아 38,000km #3

*이 여행기는 <경북매일>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 가는 길. 사진처럼 좋은 도로를 마냥 달리지는 못한다.

◇ 여행의 필수품, 휴대폰 유심카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으나 로시(오토바이)를 바로 받을 수 없었다. 통관에 걸리는 시간이 보통 이틀, 길면 일주일을 넘길 수도 있다고. 오토바이를 찾기까지 통관대행회사 근처 숙소에서 마냥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내려 입국심사를 받고 난 다음 통관대행회사 직원을 만나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휴대폰 유심카드 구입이었다.

옛 여행자 같으면 가까운 서점에 지도를 구하러 갔겠지만 요즘엔 인터넷이 연결되는 휴대폰만 있으면 지도뿐만 아니라 숙소 예약부터 통역까지 여행자가 겪는 거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으니 유심카드를 구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객선터미널 근처 통신회사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선불제 유심카드를 받았다.

인터넷과 전화가 되는 걸 확인하고 아내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낸 후에야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낯선 도시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함께 떠나온 일행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위치추적 앱(Zenly)을 설치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어디쯤 달리고 있는지 어디에서 묵는지 위치추적 앱만 켜면 알 수 있었다. 유심카드를 구입하곤 각자 예약한 숙소로 흩어졌다.

예약한 숙소는 1박에 1만 원쯤(600루블)하는 보야지호스텔, 남성 전용 8인실이었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덩치가 산만한 남자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오토바이 슈트를 입고 헬멧을 들고 있는 여행자를 쉽게 보긴 힘들 테니. 남자들만 있는 공간에서만 나는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짐을 풀고 침대에 앉으니 맞은편에 앉는 왈랴크 씨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로 말을 걸어왔다.

“야 카레이스키”(나는 한국인입니다)라는 말만 두어 번 반복하곤 당신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곤 나를 제외한 6명의 남자들이 서로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논쟁의 중심에 내가 있는 듯했으나 언어의 장벽은 높고 두터워 단 한 마디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러다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하비프 씨였다. 인천에서 일하는 타지키스탄 사람. 바로 위의 침대를 쓰는 그는 유창하게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번갈아가며 말했고, 나의 정체(?)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한국인이 맞고(내가 분명 ‘카레이스키’라고 말했음에도 그들은 내가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책방을 하고 있으며 유럽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할 계획이라고. 하비프 씨가 설명을 끝내자 다들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격려했다. 시베리아는 5월에도 추우니 조심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리곤 자신들이 온 곳이 어딘지 말해주었다.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중앙아시아나 타지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온 사람들이었다.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하비프 씨(왼쪽)에게 간단한 러시아어를 배웠다.

◇ 블라디보스토크의 첫날 밤, 러시아말을 배우다

하비프 씨와 친구 무즈카쉬 씨는 비자문제로 잠시 블라디보스토크에 왔다고 했다. 한국 체류기간이 끝나면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러시아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고 했다. 고향인 타지키스탄까진 너무 멀어 가장 비용이 저렴한 블라디보스토크에 와서 비자문제를 해결한다고 했다.

벌써 5년이나 한국에서 일했고(원래 그의 직업은 교사였다.) 자녀가 다섯이나 되어 열심히 벌어야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했지만, 가족을 두고 먼 이국에서 하루하루 버텨야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보야지호스텔에서 묵는 이틀 동안 하비프 씨는 식사를 할 때마다 나를 챙겼다. 근처 식료품점에서 사온 빵과 주스, 통조림, 약간의 채소가 전부였으나 내겐 성찬이었다. 식사뿐만 아니었다. 여행하는 동안 꼭 필요한 러시아어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가 알려준 러시아어는 따로 받아 적어놓고 틈나는 대로 연습했다. 할레브와 말라크, 코페는 러시아를 여행하는 내내 달고 살았다. 아래 ‘기초 회화’만으로 러시아를 건너가는데 별 문제가 없었으니 그의 짧은 러시아어 강의는 효과만점이었다.

할레브 - 빵

말라크 - 우유

코페 - 커피

카로아 마야사 - 쇠고기

리바 - 생선

다이티 - 주세요

바춈 - 얼마입니까?

즈드라스트위테 - 안녕하세요

이드비나테 - 미안합니다

무주키 - 아저씨

데오시카 - 아주머니

스파시바 오촘프쿠스노 - 잘 먹었습니다

 

▲ 하바롭스크 가는 도로변 공터에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그날 밤 얼마나 많은 별을 봤는지 모른다.

◇ 로시를 받고 먼저 시베리아로…

이튿날, 휴대폰이 제대로 충전되지 않는 문제가 생겨 수리점을 찾아갔으나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중고 휴대폰을 구입해야만 했다. 떠나기 전부터 휴대폰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불안했는데 떠나서야 문제가 터졌다. 혹시 모르니 미리 휴대폰을 하나 더 챙겨가라는 경험 많은 친구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어쨌거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 이곳저곳을 쏘다닌 덕분에 길을 수월하게 익힐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고향인 영화배우 율 브리너의 동상도 보고 아르바뜨 거리도 가고,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헤매기도 했다. 종일 휴대폰을 고치기 위해 걸어 다녀 파김치가 되어 숙소에 들어가서 또 하비프 씨에게 저녁밥을 얻어먹고 러시아 여행에 대한 정보를 여러 가지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내게 베풀어준 친절은 처음부터 꼬일 듯했던 나의 여정이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었다.

드디어 3일째, 오후에 세관에서 로시를 찾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로시를 찾기 전에 영사관에 가서 면허증 번역공증서를 받아야만 했다. 러시아에선 한국에서 발급받은 국제면허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따로 영사관을 찾아 번역공증서를 받아야 한다. 러시아어로 작성한 신청서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미리 준비한 덕분에 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다.

번역공증서를 발급받는 동안 영사관 관계자에게 2018년 7월 있었던 사고에 대해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트럭과 추돌해 라이더가 사망했고 영사관 직원이 이틀이나 걸려서야 사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워낙 땅이 넓고 교통이 불편해 사고가 나더라도 쉽게 해결하기 힘드니 시베리아를 통과할 때는 각별히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사망사고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사고들이 무시로 일어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일행 중 한 분도 첫 번째 여행에서 러시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크게 다쳐 돌아와야 했고 절치부심하여 다시 도전한다고 했다.

배에 오토바이를 실을 때 선사 직원에게 한 해 유라시아를 왕복해 다시 오토바이를 싣고 돌아오는 여행자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을 때 “떠나는 사람은 100명 정도지만 왕복해서 오는 경우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실패 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만났을 때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그렇게 마음을 잡았다.

오후 5시 로시를 세관에서 받자마자 함께 배를 타고 왔던 분들께 작별인사를 하고 하바롭스크로 달렸다. 하바롭스크까지 거리는 약 750킬로미터. 새벽 2시까지 550킬로미터쯤 달리다 멈추고 길가에서 침낭을 깔고 노숙했다. 일찌감치 숙소를 잡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자작나무가 춤추고 별빛이 쏟아지는 밤길 위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길엔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이 나 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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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국 기자 badagipi@gmail.com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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