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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홀로 여행… 뜻밖의 김치와 상상 밖의 여로

기사승인 2020.03.25  03: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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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국이 달린 유라시아 38,000km #4

* 이 여행기는 <경북매일>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 아무르 강을 지나면 평탄한 고원지대와 거친 산악지대를 번갈아가며 만나게 된다.

◇ 아무르 강을 건너 시베리아 고원으로

하바로프스크를 지나 아무르 강을 건너 벨로고르스크까지 달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진 북으로 올라가지만 하바로프스크를 기점으로 달리는 방향이 서쪽으로 바뀐다. 아무르 강부터 시베리아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시베리아는 서쪽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까지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러시아말로는 ‘시비르’)이다.

시베리아라는 말에 ‘추위’가 함께 연상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며 달렸다. 낮인데도 해가 구름에 가리면 냉기가 손끝과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아무르강에서 150킬로미터쯤 달리면 작은 도시 비로비잔이 나오고 그 이후론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힘든 고원지대로 들어선다.

비로비잔에서 모고차까진 오버랜더(대륙횡단여행자)들에게 꽤나 힘든 코스로 알려져 있다. 5월에도 영하로 떨어질 때가 있고 산속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예측 불가. 아예 비옷을 껴입고 달려야 했다. 도로엔 지뢰밭처럼 포트홀이 깔려 있어 속도를 쉽게 낼 수 없었다. 아침 출발할 때 계획했던 거리와 시간은 지킬 수가 없다는 걸 이미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할 때부터 깨달았다.

 

▲ 타이어에 못이 박혀 펑크가 났다.

어쩐지 문제없이 잘 나간다 했더니만... 뒷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긴 못이 구부러진 채 뒷 타이어에 박혀 있었다. 롱노즈 플라이어를 꺼내 조심스럽게 빼며 펑크가 아니길 바랐지만 바람이 샜다. 바람이 새는 걸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침을 구멍에 잔뜩 묻히면 된다. 침을 묻히니 기포가 조금씩 올라왔다. 이럴 때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고 펑크 때운 경험도 있어 그리 큰 문제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못이 비딱하게 구멍을 냈음에도 펑크 씰(라이더들은 그 모양 때문에 ‘지렁이’라 부른다)이 잘 붙었다. 때운 곳에 문제가 없는지 또 침을 잔뜩 손가락에 묻혀 타이어에 발랐더니 입 안에서 타이어 맛이 났다.

문제는 펑크가 아니라 다른 데 있었다. 함께 가져온 배터리에 연결해 사용하는 에어펌프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았다. 자동 펌프냐 수동 펌프냐를 두고 편한 쪽을 선택한 나의 실수였다. 떠나기 전 점검했을 땐 분명 제대로 작동했었다. 가장 험한 길을 달리고 있을 때 하필 고장날 줄이야. 빠진 만큼 공기를 채워 넣어야 하는데 펌프가 작동하지 않으니... 혹시나 배터리나 배선에 문제가 없는지 배터리 쪽 카울을 뜯어야 했다. 다른 문제는 없었다. 타이어 공기압이 부족해 속도를 낼 수 없었다.

 

▲ A-297 도로에서 만난 러시아 라이더 알렉스.

◇ 돌발 상황… 펑크가 나다

치타로 가는 A-297 도로에서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하바로프스크로 가는 라이더 알렉스를 만났다. 거의 오가는 차량을 볼 수 없는 고원 외딴 도로에서 오토바이 여행자를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는 천천히 달리고 있는 나를 보며 경적을 울리며 오토바이를 세웠다. 오토바이 여행자들에 대한 러시아 라이더들의 끈끈한 우정과 친절은 유명하다.

시베리아 횡단 여행 중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러시아 라이더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경험담을 자주 들었다. 들은대로 그도 어떻게든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인터넷도 전화도 터지지 않는 그곳에서 내게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려던 그의 노력은 허사였다. 해가 지기 전 최대한 빨리 숙소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행운을 빈다고 말하는 것 말곤 그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맑았던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그는 두둥거리는 낡은 할리 데이비슨의 엔진 소리를 높여 동쪽으로 사라졌다.

알렉스가 말한 벨로고르스크쯤 오니 엄청난 먹구름이 머리 위를 덮고 있었다. 만약 해가 지고 비까지 내리는 상황에 벨로고르스크까지 오질 못했으면 간이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서 노숙해야 했을 수도. 하바로프스크에서 치타까지 2천 킬로미터가 넘는 구간 사이엔 큰 도시가 없다. 벨로고르스크도 인구 6만 명쯤 되는 작은 읍내 같은 곳이다. 750킬로미터를 달렸고 소나기는 이미 한 차례 맞아 몸과 마음이 눅진해진 상태. 더는 비와 다투고 싶지 않아 가장 가까운 숙소를 찾았다.

카페를 겸한 게스트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다스런 주인아저씨는 내게 한국에서 온 라이더들이 이곳에서 묵고 갔다며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젊은이들이 흥겹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이 젊은 라이더들과는 나중에 만나게 된다.) 함께 팀을 이뤄 여행 중인 듯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짐을 풀고 잠시 누우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라이더도 있지만 유라시아 횡단의 경우 워낙 먼 거리를 달려야 하니 처음부터 동료와 함께 준비하거나 출발할 때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 함께 달리는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홀로 떠나는 것이 좋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예측할 수 없는 난관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맞는 동료와 함께라면 훨씬 여행의 피로가 줄어들 테다.

하지만 다시 떠날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혼자 떠나는 편을 선택할듯 싶다. 여행은 어쩌면 온갖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이니 마다할 수가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평생 ‘나는 없고 관계만 있는 일상’을 거의 벗어나지 못한 채 산다. 누군가 곁에 없으면 고독하고 불안해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될 테니 미리 고독을 맛보는 일 따윈 굳이 할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방주사처럼 완전한 고독을 미리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 벨로고르스크 숙소에서 주인 아저씨가 내어준 빵과 김치.

◇ 비를 피해 벨로고르스크에서 쉬다

주인아저씨가 불러 카페로 나갔더니 커피와 빵과 김치를 내놓았다. 빵과 김치라니! 시베리아 작은 마을 카페에서 김치를 맛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실 이 김치는 앞서 묵었던 친구들 것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숙소에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연속으로 묵어가는 행운을 잡은 주인아저씨는 계속 한국 여행자들이 벨로고르스크를 지나가는지 궁금해 했다. 내가 빵을 먹는 동안 내 앞에 앉아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내게 물었다. 하지만 번역기는 엉뚱한 말을 내뱉었고, 나는 “야 니 즈나유”(잘 모르겠어요)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했다.

그는 끈질기게 자신이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야 그가 묻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여행자들도 이곳을 지날 거고 그들에게 오토바이를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이곳을 추천하겠다고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야 내 앞에서 자리를 떴다. 이런 궁벽한 마을에서 외국인 여행자가 묵고 가는 일은 드물 테니 홍보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주차하며 잠시 둘러본 느낌으론 이 게스트하우스는 큰 돈을 투자했지만 제대로 영업도 하지 못하고 퇴락해버린 공간 같았다.

잠시 카페 소파에 앉아 졸다 인기척이 나서 눈을 뜨니 자그마한 체구의 젊은 남자가 접시를 치우고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스파시바”(고마워요)라고 말하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20대 초반쯤 되었을까. 옅은 금발에 핏기 없는 얼굴을 가진 그의 눈빛은 공허했고, 어딘가 모르게 결핍되고 신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요리도 청소도 모두 그의 몫인 듯했다. 주인아저씨는 오로지 돈 만지는 일만 할 뿐이었다.

테이블을 치우는 그의 손은 어렸을 때부터 험한 일을 해온 듯 손마디가 굵고 거칠었다. 손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나. 그날 밤 샤샤는 내 옆 침대에서 잤다. 따로 방이 없는 듯했다. 침대가 스무 개쯤 있는 넓은 방에 그와 나 뿐이었다. 샤샤는 밤새 뒤척이며 이를 갈았고 나는 비가 그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만약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었을 테다. 하지만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떠나기 전 그가 지친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나가는 것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고 나는 로시의 시동을 걸어 예로페이로 향했다.

 

▲ 벨로그르스크 도착 직전 세찬 바람과 함께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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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국 기자 badagip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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