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국이 달린 유라시아 38,000km #6

*이 여행기는 <경북매일>에도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네르친스크. 일기예보와는 달리 계속 비가 흩뿌려 계획했던 시간에 출발할 수 없었다.

◇짐 줄이기,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의 기본

장거리 오토바이 여행을 안전하고 편하게 하려면 자신만의 짐싸기 법칙이 필요하다. 짐을 실을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경박단소하고 효율 높은 용품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 물건들은 대부분 비싸기 마련이라 어느 선에서 타협해야만 한다. 여유가 있다면야 그런 제품들을 구하겠지만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면 이전 경험에 따라야 한다. 필요 없는 물건은 줄이고 방한 용품은 빠짐없이 챙겨야 한다.

‘젊은 스쿠터 팀’이 치타를 향해 떠날 때, 불편하게 짐을 싣고 다니는 친구도 있어 어떻게든 단단히 싸매라고 했지만 많이 불안해보였다.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짐의 부피를 줄이고 펄럭거리지 않도록 여며야 하는데 뭔가 어설퍼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진심을 담은 충고도 반복하면 잔소리로 들리기 마련이다. 저리 달리면 불편하고 빨리 피로해질 텐데 걱정이 되었지만 “조심히 달리라”는 말로 충고를 대신했다.

작은 불편이 피로가 되어 쌓이면 오토바이도 라이더도 힘들어진다. 미리 불편함을 없애야 한다. 출발 전도, 어딘가 도착해서도 미리 달릴 준비를 하고 짐 내리는 작업은 간결하게 끝내는 게 좋다. 생각보다 그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기도 하고 비가 오거나 날이 저물었을 땐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지치기도 하니까. 결국 경험이 쌓여야 한다. 몸으로 익히는 게 가장 확실하다.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많이 배웠다.

오후 늦게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오자마자 체인에 기름칠을 했다. 적어도 1,000킬로미터를 달리면 체인 점검을 해야 한다. 러시아에 와선 두 번째 체인 기름칠. 빗길을 달렸더니 로시가 엉망진창이다. 약국에서 아이들 감기약 넣어주는 약병에 체인 오일을 넣어왔다. 저렴하고 점도가 높아 장거리 여행용으로 적당한 듯하다.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교체해야 할 것이 체인과 엔진 오일이다. 엔진 오일은 5,000킬로미터마다 한 번씩, 오일 필터는 10,000킬로미터마다, 타이어나 기타 소모 부품은 자주 들여다 보고 적절한 시기에 교체해야 한다.

 

▲ 러시아 한증막 빠냐 내부. 아무도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혼자 즐겼다.

◇ 러시아 한증막 ‘빠냐’에서 추위를 떨치다

주머니에 동전이 많이 남아 숙소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30루블, 우리 돈으로 500원 정도. 동전이 주머니에 짤랑거리면 물을 사거나 커피를 주문한다. 끓여 마셔도 되지만 카페에 편안하게 앉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습도 보고 일기도 쓰고. 어째 이곳은 손님보다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비가 그치고 이리저리 동네를 어슬렁거렸는데 큰 도로를 제외하곤 적막하다. 아주 작은 동네기도 하고 외지인이 찾지 않는 초원 위 외딴 섬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사람들을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숙소에 씻을 만한 곳이 없어 왜 그런가 궁금했었다. 화장실도 하나뿐이고 샤워를 할 수 없어서 어제는 대충 씻고 잤다. 샤워를 할 수 없느냐 직원에게 물었더니 150루블이라고 해서 의아했다. 하루 방값이 500루블인데 샤워하는데 150루블이라니.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하니 아무래도 씻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값을 치르고 샤워실에 들어갔다. 샤워실에 들어서고야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씻는 곳이 아니라 ‘빠냐’라고 하는 러시아 한증막이었다. 충분히 값을 치를 만했다.

엊그제 묵은 숙소도 샤워실이 없었는데 따로 빠냐가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한증막에 벗고 누워 있으니 비를 맞으며 몸에 스민 한기가 봄볕 고드름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30분 제한이 있었지만 나 혼자 뿐이라 한 시간쯤 있었다. 땀을 엄청 흘렸더니 볼이 쑥 들어간 기분. 다음 숙소에 묵을 때 빠냐가 있으면 무조건 이용하기로.

아침 일찍 울란우데로 출발하려던 계획이 비 때문에 틀어져버렸다. 일어나자 아침에는 그친다는 비가 오후까지 내린다고 예보가 바뀌어 있었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 비가 잦아지길 기다리다 출발. 시련의 날이 될 줄은 출발할 때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네르친스크에서 울란우데까지 약 800킬로미터. 비와 눈과 추위와 더는 경험하지 못할 긴긴 ‘빨래판’ 비포장 도로까지. 온갖 난관을 모두 뚫고 새벽 1시30분 숙소에 도착했다.

5월 중순이었지만 치타 근처는 고도가 높아선지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네르친스크의 비가 치타에선 눈이 되어 내린 듯했다. 도로는 녹았지만 주변 풍경은 온통 하얗게 눈이 덮여있었다. 손끝 발끝에 감각이 없었다. 바람이 스미는 곳엔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무리 껴입어도 냉기를 막을 수 없었다. 헬멧 쉴드에 계속 습기가 차서 앞을 보기 힘들었다.

습기를 없애기 위해 쉴드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쉴드를 올릴 때마다 시베리아의 시린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눈물과 콧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 이런 눈 덮인 고원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얼어 죽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 치타 가는 길에 만난 뉴질랜드 여행자 크리스 씨. 그도 나처럼 추위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 눈 쌓인 고원에서 베테랑 여행자를 만나다

시베리아의 꽃샘추위(?)에 치를 떨며 달리고 있는데 크리스 씨를 만났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넘어와 유라시아 횡단 중이었다. 장갑을 세 겹이나 꼈는데도 손이 시려 더는 가지 못하고 쉬는 중이었다. 그는 내 앞에서 장갑을 한 겹 한 겹 벗었다. 그의 낡은 스즈키 650DR은 깨진 곳을 임시 보수하느라 테이프가 덕지덕지했다. 한 눈에 봐도 베테랑 라이더란 걸 알 수 있었다. 초콜릿과 에너지바를 서로 나눠 먹으며 날씨를 ‘욕했다’.

내가 하루에 500킬로미터 이상 이동한다니 놀랍다고 했다. 자신의 650DR은 단기통이라 진동이 심해 오래 탈 수가 없다고. 잠시 로시를 부러워하는 듯 보였다. 사실 실린더 수가 많을수록 엔진 진동이 덜하다. 대신 실린더 수가 적으면 구조가 간단해 정비가 쉬운 장점이 있다. 로시는 2기통. 500cc이상은 2기통이 많다. 650DR은 650cc인데도 단기통인 특별한 모델인데 한때 대륙횡단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었다. 지금은 단종된 상태.

도로 상태를 장담할 수 없는 장거리 여행을 준비할 때는 어떤 오토바이를 선택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가장 현명한 선택은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는 멀티 퍼포스(‘듀얼 퍼포스’라고도 한다)형 500cc 내외 배기량의 오토바이다.

배기량이 작으면 힘이 없어 힘들고 배기량이 너무 크면 오토바이 자체 무게와 크기가 부담스러워 피곤할 수 있다. 자신의 체형에 맞고 연비가 좋고 짐 실을 공간이 최대한 많이 나올 수 있는 오토바이가 최고다. 650DR은 현재 생산되진 않지만 그런 조건에 딱 맞는 오토바이 중 하나였다.

생산된 지 오래된 오토바이를 어떻게든 고쳐서 타고 다니는 외국 여행자들 사연을 종종 읽곤 했는데 크리스 씨도 그런 여행자였다. 그의 650DR 적산 거리는 100,000킬로미터가 넘은 상태였다.

 

▲ 5월 중순이었지만 치타 가는 길은 찬바람 부는 눈 덮인 벌판이었다.

나의 로시는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끝내도 70,000킬로미터가 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오랜 세월 자신의 오토바이를 아끼고 수리해가며 여행하는 그들처럼 로시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치타에서 울란우데 가는 길 중 대부분의 라이더가 선택하는 남쪽 길이 공사 중인 곳이 많고 힘든 코스라는 정보를 얻고 북쪽 길로 달렸는데 힘든 코스긴 매한가지였다. 비포장도로에 들어섰을 때 빨리 판단했어야 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비포장도로는 끝없이 이어졌다. 엄청난 진동 때문에 핸들을 놓칠까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치타에서 멈췄어야 했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다시 되돌아가기엔 이미 늦은 상태. 역시나 휴대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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