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사업 추진 두고 찬반 논란 가속화

▲ 항공우주박물관에 비치된 '비거' 모형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진주시가 추진하는 ‘비거’ 사업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박철홍 시의원(민주당)은 “비거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인데 이를 두고 모형을 개발한다거나 관련 사업을 진행했다가는 진주시가 역사를 조작했다는 조롱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고, 논란 끝에 1차 추경예산안에 오른 비거 예산은 전액삭감됐다.

진주시는 비거 설계도 등이 전해져 내려오지는 않지만, 기록으로 그 존재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초에는 비거를 관광자원화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1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1270억원을 투입하는 ‘비거 테마공원 조성사업’ 계획안을 발표했다.

진주시의 주장처럼 비거가 일부 고문헌에 등장하는 건 사실이다. 비거에 대한 기록은 신경준(1712~1781)의 '여암전서', 이규경(1788~1863)의 '오주연문장전산고', 권덕규(1891~1950)의 '조선어문경위' 등에 남아 있다. 비거는 임진왜란 당시 군관이던 정평구가 성에 갇힌 백성의 인명구조와 공중 폭약 투하 수단 등으로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여암전서는 “영남의 한 고성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한 인물이 평소의 재간을 이용해 성의 우두머리에게 비거의 법을 가르쳐 이것으로 30리 성 밖으로 날아가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 측 기록인 왜사기에도 “전라도 사람이 비거를 사용해 (왜군이) 작전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 겪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문제는 이들 문헌은 비거가 사용됐다는 임진왜란 당시보다 적게는 150여년 많게는 300여년 후에 쓰여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가 일부 문헌에 수록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비거 모형이나 설계도도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다. 국립 과천 과학관 등에 전시된 비거 모형은 모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것일 뿐, 실제 모형은 아니다.

비거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에만 남은 것이 아니다. 중국 진나라 때 장화(232~300)가 쓴 박물지에도 비행하는 수레, ‘비거’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행하는 기계의 설계도를 그렸다고 전해오며, 이탈리아 등에서도 고대시기 비행물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 비거 복원도

특히 2017년 인천하늘고등학교와 인천대 연구팀이 진주성을 직접 찾아 공동 연구한 결과 비거는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들은 비거가 만약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난 것이 아닌, 허수아비를 태워 적을 교란하는 교란 비행체에 그쳤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진주시의 주장과는 다른 대목이다.

당시 연구팀은 진주성을 방문해 현장실험을 펼쳐 물리학, 기상학적으로 ‘비거’가 사람을 태우고 날아오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주성에서 상승풍 풍력을 측정했을 때, 비거가 사람을 태우고 이륙하는 것은 어렵고, 추진동력이 있더라도 활주로가 없는 상황에서 유인비행기를 띄우려면 전투기급 사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고문헌과 일본 왜사기에 비거 기록이 남아 있는 만큼, 비거는 사람을 태우는 것이 아닌, 사람 형상을 한 허수아비를 태운 교란용 비행체(연)일 것으로 추측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사용한 낙하산을 태운 인형, ‘파라더미’와 유사한 전략무기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연합군은 이를 통해 독일군의 작전을 교란한 바 있다.

조창래 역사진주시민모임 공동대표는 비거는 실존하는 유인비행기가 아닐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여암전서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비거가 실재했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했다. 특히 “여암전서에 나온 비거 내용은 신경준이 과거를 보며 언급했던 내용을 일부 발췌해 기록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또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이야기도 일부 기록과 서양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 당시 이규경의 아버지는 번역된 서양서적이 보존돼 있던 규장각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제에 있다는 정평구의 무덤에 대해서도 일부 관련자의 추정일 뿐이며, 진주성에서 비거가 날았다는 내용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시는 역사적 입증이 됐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이미 문헌에 기록이 돼 있다. 정평구가 비거를 만들고, 이후 윤달이 또 다시 이걸 만들었다고 한다. 비거 설계도가 남지 않은 건 당시 비거가 굉장히 두려운 비책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구체적 작동·비행 원리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인천대-인천하늘고 연구팀의 결과(비거는 무인비행체로 교란용 비행체, 대형 연일 것이라는 판단)가 있지만, 과거 KBS 역사스페셜에도 건국대 연구팀 결과가 나왔지 않느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천대-인천하늘고 연구팀을 이야기하지만, 건국대 팀 연구는 말하지 않는다. 당시 충분한 고증이 됐다”고 주장했다.

시의 주장처럼 비거 이야기는 KBS 역사스페셜에서 2000년 4월 방영된 바 있다. 당시 건국대학교 연구팀은 기록에 착안한 비거모형을 만들어 사람을 태우고 20미터 높이에서 70미터 가량을 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비거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아 일부 기록에 의존, 기록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을 반영해 비행체를 만들었다. 실제 비행거리도 비교적 짧았다.

한편 진주시는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온 기록 등을 분석해 6개의 비거 재현 모델을 구축해 둔 상황이다. 시는 이들 비거 모델을 모형으로 만들어 비행실험 등을 할 예정이었지만, 관련 예산이 1차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되면서 다소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는 비거를 고증해 내 진주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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