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재 연구원 “진주시가 내세우는 비거 문헌에 비거 실존 주장 반박하는 내용 담겨”

▲ 김익재 교남문헌연구원 대표연구원(박사)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비거가 있었다는 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지 않나?” 진주시가 추진하는 비거 관련 사업은 허구에 기초하고 있다며 교남문헌연구원 김익재 대표연구원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20일 역사진주시민모임이 개최한 행사에서 비거는 설화일 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며, 진주시는 비거 관련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설파했다.

진주시는 지난 1월 1270억원을 투입해 망경동 쪽에 비거공원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비거를 관광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계획 속에 비거 모형을 제작 중에 있다. 특히 시는 비거 관련 광고를 방송에 내보내는 등, 비거가 임진왜란 당시 진주의 하늘을 날았다며 이는 세계최초의 비행체로 알려진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호보다 300여년 앞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단디뉴스>는 22일 김익재 대표연구원(박사)의 사무실을 찾아 비거문제에 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진주시가 비거관련 문헌이라고 내세우는 신경준의 ‘여암유고(거제책)’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는 비거가 실존했다는 이야기를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비거와 진주, 임진왜란의 관련성을 최초 언급한 조선어문경위의 저자 권덕규는 진주를 잘 모르는 걸로 보이며, 일제강점기 민족의식을 고취하려 이같은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비거를 개발했다는 정평구도 실존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기존 연구에도 정평구는 설화적 인물로 다루어졌지, 비거와는 연관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거 이야기는 상상으로 들으면 멋지다. 보통 비행기가 아니다. 수송기, 전투기, 폭격기 역할까지 했다. 그 좋은 기술을 딱 한번 사용하고 말았다는 게 말이 되나? (비거가 실존했다는 주장을 하는 건) 상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억지”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비거 모형(사진 = 진주시)

- 지난 20일 역사진주시민모임 행사에서 강하게 비거의 존재를 부인했다.

“비거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입증하는 건 마치 자기 삼촌이 월남전 때 스키부대에 복무했다고 주장하는 친구를 설득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무더운 월남에 스키부대가 있을 리 없지 않나) 비거가 임진왜란 때 진주 하늘을 날았다는 것을 굳이 설득까지 하며 부정해야 할 일인가 싶다.”

 

- (거제책)에 비거 관련 내용이 있는데, 이게 신경준이 과거시험을 볼 때 쓴 답안지라는 이야기가 있더라.

“맞다. 여암유고에 보면 당시 과거시험 문항이 나온다. 신경준은 희귀한 이야기라고 답했다. 답안에서 신경준은 중국 상나라 때 비거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진나라 사람 장화가 괴이한 일에 뜻을 두고 이것을 ‘박물지’에 썼고, 이것은 택도 아닌 말이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비거 이야기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그런데 진주시는 전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여암유고에 나오는 일부 내용만을 발췌해 이것이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여암유고(거제책)에는 과거시험 문항이 실제 나온다. 여기에는 “.... ‘비거가 바람을 타고 간다’는 것은 ‘박물지’와 ‘기이’에 나오는데, 그 기술을 알 수 있는가? 융거로 말하자면..(후략)..”라고 기재돼 있다.

신경준은 당시 답안에 이렇게 썼다. “.... 바람을 타고 나는 수레는 기굉 사람들이 타는 것인데 탕 임금(은나라) 때 온 것입니다. 그러나 장화가 괴이한 일에 뜻을 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번다하게(번거롭게) 말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홍무(명 태조 연호, 1368~1398) 연간에 왜구가 영남 고을을 포위했는데 어떤 은자가 고을 사또에게 이 수레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성에 올라 풀어 놓으니 단숨에 삼십리를 갔다고 하는데 이 또한 비거와 같은 부류입니다..(후략)..”

 

- 이규경의 ‘오주장전연문산고’도 사실 비거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 오주장전연문산고는 비거와 관련한 의혹이 부풀려지는 것을 막고자 쓴 글인데, 진주시는 마치 오주장전연문산고가 비거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다. 비거변증설 편에는 ‘의혹이 부풀려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는 내용이 있다. 비거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비거는 거짓말이라는 말이다. 이 책에서 비거의 작동원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해 작동원리를 이야기한 것이고,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명시돼 있지 않다. 비거가 진주에서 날았다는 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강원도 원주가 잠깐 언급되기는 한다.”

 

오주장전연문산고 비거변증설 편에서 이규경은 ‘의혹이 부풀려지는 것을 막고자’ 이 글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문헌에 진주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으며, 다만“원주 노산에 비거에 관한 서적이 감춰져 있다는 데 허황된 얘기가 아니겠냐”고 언급하고 있다.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역시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풀로 만들어 네 사람이 타는데, 고니 형태를 만든 다음 배를 두드려 바람을 일으키면 곧 공중으로 뜬다. 백 장의 거리를 갈 수 있는데 회오리바람이 불면 앞으로 날아가지 못하여 추락하고 광풍을 만나도 날아갈 수 없다. 그 기술이 수치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라고 했다“

 

▲ 지난 20일 비거 강연에 나선 김익재 교남문헌연구원 대표연구원(박사)

- 그럼에도 권덕규가 쓴 조선어문경위(1923)에는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비거가 날았다고 돼 있지 않나?

“권덕규는 일제강점기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원안을 마련한 사람이기도 하고, 당시 민족사학자였다.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여러 인물들, 가령 이순신이라든지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며 민족감정을 고취시켰던 인물이다. 총을 들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펜을 들고 싸운 독립투사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인물을 다루다가 정평구와 비거 이야기가 들어간 셈인데, 이 부분에 한해서는 좀 많이 나아갔던 게 아닌가 싶다”

 

- 조선어문경위에 비거의 작동방식이 나오나?

“작동방식, 동력원 이런 내용은 전혀 없다. 이 책은 진주와 비거가 연결되는 최초의 문헌이다. 1923년에 쓰여졌다. 당시 안창남의 모국방문비행으로 민족적 자존심이 고양됐고, 이에 따라 비거 발명사실을 수록해 한국인의 자존심을 높이려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안창남은 한국 최초의 비행사로, 식민치하의 우리나라 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긴 바 있다.

 

- 해외에도 고문헌에 비거와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걸로 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하늘을 나는 수레가 나온다. 중국에서도 오래 전(3세기, 중국 진나라 사람 장화의 ‘박물지’) 비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이라고 안 한다. 오주장전연만산고를 자세히 읽어보면, 비거라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진주라는 지명은 없다. 원주의 인물이 비거를 만드는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는 식이다. 비거는 진주와 별다른 연관성이 없다”

 

- 정평구가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도 나오는데?

“정평구전이 활자로 전해진 첫 사례는 송기면(호 : 유재)이 쓴 ‘유재집’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정평구가 등장한다. 봉이 김선달과 같은 꾀 많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전북대를 중심으로 정평구 설화 이야기가 연구됐다. 정평구전처럼 ‘~전’은 기존에도 많다. 홍길동전, 흥부전 등이다. 정평구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비거 연구를 한다면, 흥부전을 읽고는 박씨의 DNA를 연구해야 한다. 홍길동전을 보고 둔갑술을 연구해야 한다”

 

- 정평구 자손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 정평구 무덤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눴다고?

“맞다. 전북 김제에 직접 가서 자손을 만났다. 정평구를 기점으로 이 지역에 윗대와 아랫대가 살았냐고 물어봤는데, 잘 모르더라. 정평구 무덤 하나만 딱 있었다. 정평구 무덤인 줄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동네 문화원장이 가르쳐줘 알게 됐다고 했다. 그때부터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말이 안 되지 않느냐.”

 

- 비차발전위원회 측에 비거 관련 문헌 해석본을 주면서 비차는 근거 없는 이야기라 전해줬다고? 위원회 측 반응은 어떠했나?

“할 말이 없고, 당황하는 눈치더라. 비차는 실존하지 않았다니 당혹스러웠을 거다. 그럼에도 사업이 계속 추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닌가?”

 

- 비차를 과학적으로 고증하지 못하더라도, 설화에 기초해 관광자원화하는 건 가능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일부 나온다.

“진주시가 무슨 사업을 하든 내가 관여할 바 아니다. 다만 비거는 진주랑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 조선어문경위(1923)을 쓴 권덕규가 진주성과 비거를 왜 연결했을지 생각해보자.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은 상징적인 장소였다. 진주사람들이 계사년 2차 진주성 전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왜군에 굴하지 않고 모두 몰살될 때까지 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보면 비거를 타고) 성주가 도망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앞뒤가 너무 안 맞다. 비거를 잘못 강조하면 진주성 전투, 그 훌륭한 역사마저 사실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 비거 관련 사업 추진의 핵심관계자와 토론하고 싶다고 했다.

“나도 비거 관련 이야기가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다. 비거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핵심관계자와 토론하고 싶다. 토론해서 설득 당했으면 좋겠다. 내 이야기가 틀렸으면 좋겠다. 비거 이야기는 상상으로 들으면 멋지다. 보통 비행기가 아니다. 수송기, 전투기, 폭격기 역할까지 했다. 그 좋은 기술을 딱 한번 사용하고 말았다는 게 말이 되나? (비거가 실존했다는 주장을 하는 건) 상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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