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뭐 하러 가요. 그런 사람 다시는 보지도 마소.” 점심 먹고 골목 평상에 나가려는데 아내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오전 밭일 마치고, 점심 먹고, 좀 쉬다 골목 평상에 나가는 것이 요즘 일과였다. 이웃 몇몇이 모여 농사이야기를 나누거나 민화투를 치면서 한더위를 피하는 평상이었다. 오후 네 시를 넘어서면 또 다들 밭으로 나가 텅 비는 평상이었다.

그동안 나의 평상 나들이에 아내는 한 번도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안 나가고 뭉기적거리고 있으면 얼른 나가라고 내 쫓기도 했고, 집에 먹을거리라도 있으면 살뜰히 챙겨주는 아내였다. “그렇다고 어찌 영 안 나갈 수 있나.”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뭐가 좋다고 놀긴 놀아.” 나의 어눌한 목소리에 돌아온 아내의 목소리는 화가 잔뜩 끼어있었다.

▲ 김석봉 농부

사단은 평상에 나오는 유씨 때문이었다. 지난해 그의 집 마당에 못 보던 개가 한 마리 묶여있었다. 몸집도 우람한 순종 리트리버였다. 안산에서 고기 집을 한다는 그이 막내아들이 집에서 키우다 못 키워 데려주고 갔다는 거였다. 이름은 ‘행복이’였다.

“어허 참, 저거를 사진으로 찍어서 하루 한 번 보여 달라는데 어찌 해야 하나.” 행복이를 보고 싶어 하는 손자들이 행복이를 두고 돌아가면서 몇 번이고 당부를 하더라는 거였다. 핸드폰 사진 찍는 방법과 전송하는 방법을 배웠다는데 금방 잊어버렸다면서 내게 가르쳐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행복이는 그 집 마당에 묶여 살았다. 우리는 철창이었다. 그것도 땅에서 두어 뼘 들린 들창이었다. 주변엔 두어 마리의 잡종견이 함께 살았다. 행복이는 우렁찬 목소리로 연신 짖었다. 행복이가 짖어대면 평상에까지 시끄럽게 들렸다. 어쩌다 골목에 사람이라도 지나갈라치면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는지 귀를 틀어막아야할 지경이었다.

“행복이를 언제까지 키우려고 그러요.” “몰라. 젠장할. 손자들이 절대로 못 팔게 하니까.” 행복이가 들어오고 얼마간 평상에선 행복이 이야기가 오갔다. “저리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는 첨 본다.” “내가 행복이 때문에 딱 죽겠다. 고양이만 얼씬거려도 짖어대니 잠을 통 못 잔다.” 유씨 뒷집 아주머니는 행복이로 인해 받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투덜거렸다.

“걱정 마. 좀 있다 팔아버릴 거니까.” 유씨는 그런 말로 아주머니를 달랬다. 그 말을 듣자 불현듯 행복이를 곧 팔아버릴 거란 예감이 들었다. 어차피 끝까지 키울 수는 없을 테니까. 멀리 안산 사는 막내아들이나 손자도 차츰 행복이의 존재를 잊어갈 테니까. 이런저런 잡종견 사다 키워 개장수에게 팔아온 유씨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형님. 행복이를 팔 거야?” “그럼 어찌 키워. 애들 봐가면서 치우긴 치워야지.” “팔 때 내게 말해요. 내가 살 거니까. 알았지?” 나는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유씨는 몇 번이고 그러겠다고 했다. 아내도 잘 했다면서 어떻게든 행복이를 개장수에게 팔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가 못 키우면 잘 키워줄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유씨는 용돈벌이로 개를 키웠다. 보통 서너 마리의 개가 그의 집 마당에 묶여있었다. 대개 잡종견이었다. 오랫동안 읍내에서 청소부 일을 해서 마당발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다 강아지를 얻어오기 일쑤였고 몇 개월 키우다 개장수가 오면 팔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주인 따르는 짐승인데 어찌 그리 매정하게 팔아 치워버리는가.” 철창으로 개조한 개장수 트럭이 집 앞에 서고, 개가 버팅기면서 끌려나오고, 계산이 끝나고, 트럭이 골목을 빠져나가고 나면 내가 다 맥이 풀려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괜히 신경질이 차오르고 짜증이 돋았다.

“그럼, 개를 키워 팔지. 어째.” “이번엔 얼마나 받았어? 복날이 다가와 비싸게 받았겠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이죽거리는 유씨나 개를 키워 판 돈에 군침을 삼키는 다른 이웃들 모습을 보면서 몇 번이고 이 평상에 나오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며칠 전 그날, 평상에 나와 앉았는데 그렇게 짖어대던 행복이 소리가 통 들리지 않았다.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돌담을 돌아 유씨 집 앞마당을 살펴보았다. 쇠줄에 묶여 철창 우리를 바쁘게 드나들며 짖어대던 행복이는 보이지 않았다. ‘개 팔아요. 염소 팔아요. 개 삽니다. 염소 삽니다.’ 이른 아침 마을을 드나드는 개장수 확성기 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행복이가 안 보이네. 행복이가.” 헐레벌떡 평상으로 돌아와 이웃들을 다그쳤다. “팔았대. 개장수에게 삼만 원 받고 팔았대.” “내가 몇 번이고 팔려면 내게 팔라고 안 하든가. 왜 개장수에게 팔아.” 서글픔 보다는 분노가 차올랐다. 그리고는 이내 눈언저리가 뜨거워지는 거였다.

쇠줄에 묶여 끌려나오는 행복이가 눈앞에 선했다. 속수무책이었다. 허망하고 허망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때 불쑥 유씨가 나타났다. 쏘아보는 것으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바라보는 것으로도 속이 켕겼다.

“지 새끼는 안 내다 파나? 지 새끼들도 다 내다 팔아먹지 그래!” 나는 돌아앉아 표독스럽게 말을 뱉었다. “내가 다시는 이 평상에 오나 봐라. 으이구, 꼴도 보기 싫다.” 이 한마디를 던져두고 벌떡 일어나 돌아 와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내는 안절부절이었다. 그 개장수가 오면 알아볼 수 없냐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한동안 평상에 나가기 싫었다. 그날 그 얼굴들만 떠올리면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 거였다. 돈 삼만 원 받았다고 이죽거리는 그 표정이나, 짖어대는 소리 안 듣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그 모습에 가래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평상에서 오리고기 구웠다며 전화가 왔다. 따분한 한낮이었다. 그래, 저 이웃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지. 가만히 누워 그들이 살아온 길을 더듬었다. 소작을 벗어나려 산중턱에 화전을 일궈온 사람들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산을 뒤져 뱀을 잡아 팔아온 사람들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팔다리 잃어가며 석재공장을 다닌 사람들이었다.

석이버섯 따다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었고, 뱀에 물려 죽은 사람도 있었다. 다슬기 잡다 강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었고, 도토리 주우러 큰 산 다녀오다 길을 잃고 얼어 죽은 사람도 있었다. 모내기를 마치고 물꼬 싸움에 맞아죽은 사람도 있었고, 누에치는 계절엔 뽕잎을 훔치다 들켜 맞아죽은 사람도 있었다. 돈이 되는 일은 뭐든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독하고 서럽게 살아온 그들이었다. 이 앙다물고 온몸으로 버텨온 그들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아 행복이를 팔았다. 행복아, 안녕. 네 운명이 아무리 안타깝다한들 내가 어찌 저들을 미워할 수 있단 말이냐. 네 운명이 아무리 처절하다한들 내가 어찌 저들의 삶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이냐. 잘 가. 행복아. 평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직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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