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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익 칼럼] 남북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은 미국이다

기사승인 2020.06.29  00:5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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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등한 한미관계 없이 남북평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은 지난 6월 25일, '종전'을 언급하며 북한에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북한도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대단히 무책임한 유체이탈화법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왜 미국이 아닌 북한에게 종전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하는가. 이는 열흘 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했던 “북한, 과거의 대결 시대로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리지 않으려면 남북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탈북자들의 대북 전단 살포로 고조된 남북 간의 대립과 긴장이 이 같은 발언으로 더욱 격화됐고, 이어서 나온 북한의 대응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였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아직 그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짐짓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이미 한국전쟁 이후 형성돼온 남북의 대립‧갈등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 그 핵심 원인제공자인 미국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오래전부터 요구해왔다. 1970년대부터 미국을 상대로 정전협정(휴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맺을 것을 줄기차게 촉구해왔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평화협정, 혹은 그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종전선언을 끝내 거부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겉으로 어떻게 분식을 하든, 속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간의 화해, 더욱이 통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최근의 남북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남북관계가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웅변한다.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로 ‘남북 간 적대행위 전면중지’를 다짐한 2018년 판문점선언과 평양에서의 9·19 군사합의는 근본적으로 부정당하는 듯 했다. 곧 이은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군사행동계획 보류 선언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후 남한의 대응에 따라서는 더 큰 긴장과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북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간 쌓아온 남북의 신뢰관계는 크게 훼손됐고 이를 복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18년 9월, 능라도 5.1경기장에 운집한 15만 명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들을 상대로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은 ‘남북화해와 평화의 길’을 역설했다. “오늘 우리 두 정상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 나는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을 끝낸 뒤 나온 이 연설은 전율에 가까운 감격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남북관계가 펼쳐질 것을 기대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이 다 돼가는 현 시점에서 복기해보면 달라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왜 그런가. 문제의 뿌리에는 남한의 ‘군사적 식민 모국’인 미국과, 미국 정부의 숱한 강압과 협박에도 아무 소리 못하고 굴복해온 남한 역대 정권의 불평등한 상하관계라는 엄연한 자화상이 놓여 있다. 한국전쟁 때 대통령 이승만이 맥아더에게 넘긴 군사작전 통제권은 종전 후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미국의 손아귀에 그대로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완전한 주권국가라 할 수 없다.

그뿐인가. 한미동맹이라는 명목 하에 미국이 한국에 강요하고 있는 법적, 제도적 불평등과 관행적으로 당연시돼온 ‘갑을 관계’는 상상을 초월한다. 비근한 예로 미국 트럼프 정부가 느닷없이 평상시보다 5배 이상 내라고 강요하면서 국민을 분노케 한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을 보자.

우선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수많은 나라 중 특별협정으로 미군주둔경비를 보장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국제법상의 원칙은 파견국(미국)이 자국 군대의 주둔비를 부담하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은 미국에 대해 종속적인 관계라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은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에게 항복했고 자신들의 개전 책임과 미국에 끼친 손실 등에 대한 반대급부로 방위비를 낸다지만, 한국은 무슨 근거로 미군의 주둔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

한국과 일본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GDP 중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은 2.5%인데 반해, 일본은 1.0%에 불과해 한국의 부담이 훨씬 무겁다.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일본은 우리와 달리 미군주둔비 부담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은 미국의 강압과 어거지로 체결된 불평등 협정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특별협정이 처음 맺어진 것은 1991년이다. 그런데 그 직접적 배경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과 방위비분담을 연계시킨 1989년 미 의회의 넌-워너 수정법이다. 미 국방부는 이 법을 근거로 한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하며 방위비 분담을 강요해 온 것이다.

또 하나 덧붙일 것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의 상위규범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주한미군의 주둔목적을 한국영역의 방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주된 기능은 한국방위에서 중국봉쇄, 타지역의 분쟁 개입을 위한 지역 및 세계 기동군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원칙대로라면 우리가 방위비분담금을 미국에 지급할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우리가 기지 및 시설 사용료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한국이 낸 방위비분담금 중 134억 원이 주한미군이 아닌, 주일미군의 F-35 전투기 정비 등에 쓰인 사실이 드러났다. 비유컨대 ‘폭력배가 힘이 약한 시민을 상대로 뜯은 돈을 원칙이나 기준도 없이 제 멋대로 쓰고 있는 것’이 방위비 분담금의 은폐된 실상이랄 수 있다.

“쌍방은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함으로서, 사실상의 ‘남북 간 불가침선언’이었던 9.19 군사합의가 휴지조각이 된 데는 미국의 통제와 감시가 결정적이었다. ‘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급진전하자, 다급해진 미 국무부는 한미워킹그룹을 설치한다. ‘한미워킹그룹’의 별명이 ‘조선총독부’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통일외교 정책 전반을 미국이 조정,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설치 과정을 보면 주종관계에 버금가는 한미관계의 불평등성과 한국 정부의 대미 굴종적 태도가 약여하게 드러난다.

2018년 10월 10일, 한국 정부의 ‘5·24 제재’ 해제 검토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트럼프는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국 정부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폭언으로 압박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12일, 문재인은 “남북관계를 국제제재의 틀에서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시작하겠다”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한 달도 되기 전, 능라도에서 조선 인민들 앞에서 했던 호언장담은 찾아볼 수 없었다.

28일, 일개 차관보에 불과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한, 남북정상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이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가안보실장 등을 차례로 만나 한미워킹그룹 구성을 단칼에 합의해 버리더니, 남북 정상이 맺은 공동선언을 이행하지 못하도록 본격적인 방해공작에 돌입한다. 그 결과 ‘평양공동선언의 남측 이행률 0%’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금강산, 개성공단 재개와 철도, 도로 연결이 불발된 것은 물론이고 이산가족 상봉마저 한미워킹그룹의 제동에 걸렸다. 2019년 신년사에서 북한의 김정은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조건 없이 열겠다고 했지만 끝내 한미워킹그룹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인도적 약품 지원마저 무산시켰다. 2019년 1월, 남북 간 보건의료협력 회담으로 타미플루 20만 명분과 신속진단 키트 5만 개를 개성까지 육로로 전달하기로 합의했으나, 전달하는 당일 한미워킹그룹은 “싣고 갈 화물 차량이 대북 제재에 저촉될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지원 사업을 좌절시켰다. 당시 북한 측 관계자는 개성에서 2주나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사업을 사사건건 파투냈던 워킹그룹 해체와 ‘평양선언’ 이후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도 하지 못한 외교안보 라인의 교체 등이 우선적인 대안으로 떠오른다. 또 8월로 예정돼 있는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기존의 남북정상 합의문 국회비준 추진 선언 등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조치에 힘이 실리려면 미국에 대한 시각의 전환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전제했듯이 미국은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으로서는 남북이 서로 대결관계에 있어야, 남한에 무기도 팔아먹고 방위비 분담금도 올릴 수 있으며 중국에 대한 견제세력으로서 활용가치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오랫동안 평화협정 체결을 갈구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는 이유다. 종전선언, 혹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없어지고, 지금까지 한국을 지렛대로 미국이 누려온 온갖 특혜와 장악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는데 미국이 그런 모험을 할 리가 없다는 말이다.

2018년 남북의 정상인 문재인-김정은 사이에 의욕적으로 추진됐던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 핵문제 동시 해결이라는 담대한 시도는 현재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객관적으로 미국 등 주변 강대국의 개입과 자기이익 관철 등이 주된 원인이지만, 부당한 압력에 맞서 싸우고 해결해내려는 한국 정부의 주체적인 의지와 역량 부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미국의 전 대통령 안보보좌관 볼턴은 최근 회고록을 통해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으로 한국에서 50억 달러를 받아내는 길은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평상시에도 품격과는 거리가 먼 거친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장사꾼’ 트럼프이긴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민과 정부에 대한 비하와 무시가 날것으로 묻어나는 막말을 들으면서 낯이 뜨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남북미관계 변화를 의욕적으로 꾸려온 문재인 정부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남은 임기의 안정 여부는 물론, 한반도의 장래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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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choih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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