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지역, 지원 말고 자치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빌면 ‘지방’은 ‘중앙’의 식민지다. 지방이라는 한국의 변방, 주변부, 사각지대에는 중앙에 대한 피해의식, 비굴함, 열등감, 모멸감, 적개심만 가득하다. 물론 헌법 제11조 1항에 따르면 ‘지방’은 중앙의 ‘식민지’가 될 수 없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헌법에 분명히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법이라는 것도 애초 중앙의 기획과 의도로 쓰여 졌을 뿐, 지방의 편에서 해석되거나 작용되지 않지 않는가. 그래서 강 교수는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헌법 제11조 등은 아무도 지키지 않는 빈껍데기, 아니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면서 "지방은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교육ㆍ언론 등 전 분야에서 서울에 종속된 '내부식민지'"라고 개탄하는 것이리라. 강 교수는 “지방정부는 자율성도 낮을 뿐더러 재정 독립성도 약하며, 특히 인사와 예산의 종속은 지방정부의 '중앙에 줄 대기' 경향을 키웠다”고 고발한다.

 

지방자치의 최대수혜자는 지방의 ‘토호 개발업자’

▲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매년 연말이면 감사원은 ‘지방자치단체 재정운영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된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연례행사처럼 각종 비리를 저지른 지자체장들이 뉴스에 오르고 법의 심판을 받는다.

지자체장의 비리라고 하면 지난날 ‘I군의 5적(賊)’ 이야기가 떠오른다. ‘5적’이란 그 지역을 장악한 뿌리깊은 토착브로커들의 위세를 일컫는 말이다. 특히 지방자치 선거 때마다 유독 기승을 부린다. 군수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에게 ‘5적’들은 미리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선거자금을 댄다. 이른바 ‘5적 개발업자 토호 카르텔’은 누구든 당선만 되면 맹수가 먹이를 탐하듯 지역의 각종 이권 개발사업에 뛰어들어 본전 이상을 챙겨간다. 이들에게 지방자치란 돈 놓고 돈 먹는 이전투구 격투기장 같은 투전판인 셈이다.

I군 말고 다른 지역의 사정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어느 지방이나 시장·군수 선거 때마다 부정과 비리가 되풀이되는 구조적 원인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마다 현지 토건업자, 조합장 등 지역 개발토호들의 부패 카르텔이 뿌리 깊고 강고하다. 게다가 경상도나 전라도나 특정 지역연고 정당이 그 지역의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장악하다보니 ‘같은 편끼리 하는’ 의정 감시의 역할조차 미비하고 부실하다.

이처럼 수사권도 없고 감사 기능도 미약한 지방의회는 지방정부의 실정을 감시하고 감독하기 어럽다. 사실상 지자체장은 외부나 상부의 감독과 견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중앙당과 지역구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도 숙명적 병인이다. 지방자치가 아니고 중앙통치의 유령이 여전히 지방을 일방 지배하고 있는 꼴이다.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23조 제2항이다. 국가의 균형발전은 헌법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국가의 중대사다. 지금 수도권은 11.8%의 면적으로 인구, 취업인원, 지역내 총생산의 절반을 독차지하고 있다. 국토가 극도로 불균등하게 이용되고 비효율과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경고성 지표나 마찬가지다. 강준만 교수의 ‘지방 식민지론’으로 함축되는 중앙과 지방, 또 지역과 지역의 불균형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이자 국가문제다.

무엇보다 지역 불균형과 격차는 ‘지역감정’의 뿌리이자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시와 농촌, 경부축과 비경부축 사이에 다양한 차원의 격차와 반감이 발생한다. 지역 내에서도, 수도권이나 광역경제권 내에서도 낙후지역의 문제는 상존한다. 동일한 행정구역 안에서도 지역마다 격차는 피할 수 없다. 가령 서울시 같은 경우 강남과 강북의 격차, 도농복합지역의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의 격차 같은 양상이다.

 

▲ ‘지역의 분권과 자치’를 공공건축으로 구현한 故 정기용건축가의 ‘무주군 농민의 집’ [사진 = 정기석]

지방자치의 주인은 ‘참여하는 시민의 공동체조직’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간의 협력과 통합을 위해서 지방분권, 지방자치는 국가발전의 핵심과제이다. 더욱이 오늘날 지역불균형 또는 차별의 원인이 결국 권력의 중앙집중에 있기 때문에 지방의 자율과 분권은 미룰 수 없는 숙제다. 지금처럼 지역마다 중앙정부의 한정된 재원과 기회를 선점하고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면서 지역 간의 협력과 통합을 모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위선이고 기만이다.

실천적으로는 분권화된 지방정부에 대한 시민적 견제와 감시 기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른바 참여자치와 시민자치를 통해 시민주의적 자치분권이 실현되어야 한다. 지방분권으로 인한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해서 교정, 보완장치도 아울러 병행해서 작동해야 한다. 자칫 지역 간 과도한 경쟁으로 기존의 격차와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확대될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 재정조정 제도, 자치단체 간 수평적 보조, 지역최저기준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지방'이란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 '지역'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지방이란 용어는 '서울'을 중앙으로 보고 나머지 지역은 변두리 또는 나머지를 보는 시각과 인식이 은근히 깔려있는 것이다. 지방이 아닌 지역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저마다의 지역 안에 있다. 지역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지방재정의 절반 이상을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지역 독자적으로, 주체적으로 살 길을 모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어차피 어느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주체는, 책임질 당사자는 바로 그 지역이다. 그 안에서 일터와 삶터를 꾸려가는 지역주민들이다.

그동안 우리의 지역발전 정책은 ‘장소(place)’에 매달렸다. ‘시설(hardware)’에 집착했다. SOC 같은 토건사업에 집중했다. 지역발전의 궁극적 대상이자 성과는 장소나 시설이 아니라 ‘사람(humanware)’이나 ‘프로그램, 컨텐츠(software)’라야 한다. 휴먼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위해 하드웨어와 장소가 결정되고 설계되어야 한다. 이제 인적 자원, 사람의 창의력에 의해 창출되고 개발되는 지역 고유의 특성과 자원이 지역발전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마땅히 이러한 지역발전 전략과 정책은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그 지역에 의해, 지역주민들에 의해 주도되어야 한다. 지방의 ‘자율’과 ‘책임’에 기초한 지역발전정책으로 제도와 정책의 패러다임과 기조가 혁신되어야 한다. 그렇게 지방분권, 지방주권, 지방책임경영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 다만 지방분권, 지방주권, 지방책임경영의 주체는 정부나 행정이 떠맡아서는 안 된다. 반드시 ‘참여하는 시민의 공동체조직’이 나서야 한다. 그래야 우리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학교’인 지방자치의 주인, 민주공화국의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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