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민간인 학살 70주기 맞아 제12회 합동 위령제 열려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학살의 장소에서 흐른 붉은 피는 잔디마저 잠기게 했다고 합니다. 학살이 일어난 용산 고개에 시신이나마 찾으려고 온 가족들의 광경은 아비규환 바로 그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고통으로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보도연맹원 명부를 공개하고,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샅샅이 밝혀야 합니다”

 

▲ 10일 진주 대평면 청동기박물관 야외에서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한국전쟁 전후 일어난 진주 민간인 학살사건 70주기를 맞아 제12회 합동위령제가 10일 진주시 대평면 청동기 박물관 야외에서 열렸다. 유가족들은 이날 부당하게 학살된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곧 출범할 2기 진실화해위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 수는 200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체로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사람들이다. 보도연맹은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반공단체로 알려져 있지만, 좌익활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숱하게 가입했다. 전국적으로 그 수는 30만 여명에 달했다.

 

▲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골이 나온 명석면 용산고개에 세워진 표지판

정연조 (사)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장은 이날 70년 전 학살당한 사람들은 “스스로 보도연맹에 가입하고, 소집에 응하고,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국가의 지시나 명령에 순종했던 사람들”이라며 “그럼에도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와 사랑하는 가족의 지척에서 학살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희생자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독서회 등에 가입해 사상이나 이념보다 독립운동에 관심이 높았던 분들이다. 이런 분들을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보도연맹에) 강제로 가입시켰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살했다” 고 부당함을 토로했다. 정 회장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발발 후 명석면 용산고개서 육군 특무대 부대원들에게 학살된 바 있다.

 

▲ 10일 진주 대평면 청동기박물관 야외에서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그는 진주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기록 모두를 공개하라고 그간 정부에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보도연맹원 명부가 한국전쟁 당시 모두 불탔다며 이것이 불가하다는 해명을 해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명부 복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연좌제 폐지 때까지 행해졌던 신원조회 등을 보면 명부가 당시도 남아있었다는 것. 연좌제는 1981년 공식적으로 폐지된 바 있다.

정 회장은 이날 “보도연맹원 명부 복원과 민간인 학살의 전말을 밝히고 사과하는 것이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보도연맹원 명부 공개와 그 전말을 샅샅이 공개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출범을 목전에 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상을 소상히 밝혀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의 유골이 임시로 안장돼 있는 명석면 용산고개 컨테이너

이날 위령제에는 박철홍 윤성관 윤갑수 서정인 정인후 허정림 진주시의원(민주당) 등을 비롯한 유가족, 시민 100여 명이 참석했다. 조규일 진주시장과 이상영 진주시의회 의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전날 조 시장은 유가족 10여 명과 자리를 함께하며 이들의 고충을 전해들은 걸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전쟁 전후 진주에서는 명석면, 반성면, 정촌면, 문산읍 등지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2년에는 명석면 용산 고개에서 다수의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골과 유품이 발견된 바 있다. 이후 유골 채집은 국가가 아닌 민간 주도로 이루어졌고, 당시 채집된 유골은 현재 용산 고개 컨테이너 건물 안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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