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키는 또 하나의 길

다시 지리산이 시끄럽다.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하동군이 형제봉과 악양 화개 그리고 청학동까지 연결하는 20.8Km의 케이블카-산악열차-모노레일 건설사업을 강행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곳이기에 초록걸음 길동무들에겐 더더욱 안타까운 소식임에 틀림이 없다.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은 구례, 남원, 함양 그리고 산청에서 세 번씩이나 반려를 당했다. 수십 년간 논란이 되어왔던 지리산댐 건설계획 또한 지난 2018년에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건설 백지화 선언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또다시 어머니의 산이자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에 큰 상처를 내려고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길동무들과 함께 걷는 초록걸음이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키는 또 하나의 길이란 다짐으로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어리석은 내라는 뜻의 우천(愚川)에서 유래된 어천마을을 출발하여 성심원 쪽 아침재를 향하는 길에서 만난 능소화가 길동무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동백꽃이나 무궁화처럼 통째로 댕강댕강 땅에 떨어지는 그 장렬한 최후 또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능소화를 보며 즉석에서 이원규 시인의 ‘능소화’를 길동무들에게 들려주었다.

 

▲ 능소화가 피어 있다[사진=최세현]

능소화 /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 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 7월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사람들[사진=최세현]

어천마을에서 성심원 가는 가파른 언덕길 정상에 자리한 아침재, 아마도 성심원 쪽에서 보면 아침이 밝아오기 때문에 붙은 고개 이름이 아닐까 가늠해 본다. 아침재 지나면 얼마지 않아 암자라고 해야 걸맞을 웅석사가 자리하고 있다. 웅석사 입구 노란 원추리 꽃무리가 우릴 반겼다. 여름날 근심을 잊게 해준다고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리는... 웅석사를 지나면 웅석계곡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대통골이 나오는데, 이 대통골은 둘레길 7코스와 웅석봉 등산로가 만나는 곳으로 이곳에서 길동무들과 함께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점심을 먹었다. 여름 둘레길은 가능하면 계곡을 끼고 걷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웅석봉은 지리산의 동쪽 끝자락으로, 백두대간의 들머리라고 할 수 있다. 여순사건으로 지리산으로 향하던 남부군의 사령관 이현상이 웅석봉을 바라보며 “동무들! 저기가 바로 달뜨기 산이요! 이제 우리는 살았소!"라며 오랜 행군에 지친 부하들을 독려했다는 그 웅석봉이다. 지리산 서북 능선에서 바라보면 웅석봉 쪽에서 달이 떠오르기 때문에 웅석봉 능선을 달뜨기 능선이라고 한다. 그 달뜨기 능선에서 산청 쪽으로 흘러내린 물들이 웅석계곡을 지나고 어천계곡을 지나 경호강에 다다른다.

 

▲ 7월 지리산 초록걸음에 함께한 아이들[사진=최세현]

대통골에서 웅석봉 쪽으로 향하는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길 21개 구간 중 가장 악명 높은 곳이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2Km 남짓한 이 구간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가파른 경사가 계속된다. 그래서 둘레길 7코스 운리-성심원 구간은 가능하면 성심원 쪽이 아닌 운리에서 출발할 것을 둘레꾼들에게 권한다. 이번 초록걸음은 이 대통골에서 웅석봉 쪽으로 향하지 않고 웅석계곡을 따라 나 있는 등산로를 택해서 어천마을로 원점회귀하기로 했기에 부담 없이 길동무들과 계곡 물놀이 즐기며 쉬엄쉬엄 하산을 했다.

이번 초록걸음에도 미래세대인 아이들이 여럿 함께 걸었다. 사실 지리산의 주인은 이 아이들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확실치도 않은 눈앞의 돈 몇 푼 때문에 지리산에 케이블카도 모자라 산악열차와 모노레일까지 놓으려는 일부 지자체 단체장들의 개발 망령이 다시 지리산을 위협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어머니의 산 지리산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관광 자원임이 분명하다. 길동무들과 함께 제발 지리산을 그대로 두길 바라는 퍼포먼스로 7월의 초록걸음을 마무리했다.

 

▲ 지리산 초록걸음에 참여한 사람들이 숲속을 걸어가고 있다[사진=최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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