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돈을 들여 거대한 웃음거리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정평구가 하늘을 나는 수레(飛車)를 타고 왜병에 포위된 성 안으로 들어가, 친구를 구하여 30리 바깥으로 날아 빠져나갔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약 150년 또는 200년이 지나 쓰여진 야사의 이 한 줄이 그로부터 다시 200년이 지난 오늘날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6년부터 민간단체 ‘비차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하던 비거(또는 비차) 복원과 문화콘텐츠 제작 사업에 진주시가 본격적으로 가세, 1천억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 ‘비거테마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나서면서다.

한류드라마의 시초격인 ‘대장금’이라는 명작 드라마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단 한 줄의 기록을 근거로 작가의 상상력과 당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버무려 창작된 것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애초 허구라는 것을 전제로 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과 지자체가 나서서 ‘역사’와 ‘과학’이라는 이름을 동원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시설물을 짓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더구나 그 대상이 현대 과학의 총아라 할 수 있는 ‘비행체’의 실존 여부에 관한 것이라 한다면 허투루 접근할 일이 아니다.

진주시는 자체 제작한 홍보 영상에서 비거를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또한 비거의 실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서양의 라이트형제가 발명한 비행기보다 300년이나 앞섰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이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됐든, ‘항공 도시’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진주시의 욕망에서 출발했든 ‘역사’와 ‘과학’을 입에 올리기 위해서는 ‘입증’의 책임이 반드시 뒤따른다.

왜 역사는 1903년 불과 1km 남짓 날아오른 라이트형제의 기록을 세계 최초의 비행기록으로 인정하는가?

고대 이카루스 전설을 통해 알 수 있듯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세기에 새의 날개짓을 모방한 비행체 설계도와 오늘날의 프로펠러를 닮은 비행체 스케치들을 수십 장 남겼다. 또한 18세기 유럽에서는 열기구를 발명해 동물과 사람을 태워 하늘을 날아오르는 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당한 근거와 실증이 있음에도 이들 기록은 모두 ‘비행기’로 인정받지 못했다. 자체 동력원의 원리를 입증하는 이론도, 실제 비행을 입증할 수 있는 실험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 비해 진주시가 ‘최초의 비행기’라고 주장하는 ‘비거’는 어떤가. 구조를 설명하는 스케치는커녕 관련 그림 한 장, 비행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 한 줄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군에서 만들어 항공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비거’ 모형도 당시에 흔히 구할 수 있었던 대나무와 창호지로 만들었을 뿐 모두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시민단체나 역사연구가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진주시는 역사적 사실로 못 박으려던 종전의 입장에서 벗어나 ‘스토리텔링’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비거’의 실존 여부를 떠나 옛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테마공원에 ‘역사관’이나 ‘과학 체험관’을 짓겠다는 기존 계획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진주시는 역사적 고증이나 과학적 근거 없이 127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비거역사테마공원’ 건설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진주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애초 목적과는 정반대로 막대한 돈을 들여 거대한 웃음거리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조규일 시장과 문화관광 담당자는 최근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안동시 유교랜드를 다녀온 후 작성한 한국일보 칼럼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 서성룡

유교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철학 대신 관광객 유치 욕망과 어설픈 교육열이 투사된 지자체의 홍보 관광 시설물이 수백억 원짜리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자체마다 이런 시설물 한 두 개쯤 없는 곳이 없다. 경북 군위군에서는 9억 원짜리 대추모양을 한 화장실이 예산 낭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했고, 인근 무주군에는 수십억 원 짜리 ‘태권브이 랜드’ 조성 사업이 예산낭비와 환경파괴 문제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진주시의 설명대로 ‘비거’가 역사 고증이나 과학으로 증명될 대상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소재라면 먼저 스토리텔링부터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비거를 발명했다는 정평구에 대해서나 비거를 만든 이유, 심지어 정확한 명칭까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준비 없이 천억 원을 쏟아 부어 공원과 건물부터 짓겠다는 것은 토목공사와 건축물로 관광개발을 하겠다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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