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폭풍이 지나가고 있다. 항암 구충제라는 광기의 폭풍이.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서는 합리적 판단이 불가능하다. 누구의 이야기도 통하지 않는다. 의견과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며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 보건의료 제도와 제약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 정보 제공자인 유튜버의 무책임함까지 더해져 광풍의 회오리는 거세기만 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와 가족들의 절박한 심정까지 더해지면서 회오리는 폭풍이 되었다.

동물용 구충제 항암 이슈를 촉발시킨 개그맨이 결국 구충제 복용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작용 위험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적 이슈가 되다보니 의사협회와 약사회도 동물용 구충제 사용중단을 촉구해왔다.

그런데 과연 동물구충제에는 정말 항암효과가 전혀 없는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황규민 약사

일부 동물구충제에는 '미미하지만' 항암효과가 있다. (이 글이 또 다른 오해의 불씨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그 효과라는 것이 말 그대로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구충제 성분들은 항암제로서는 폐기되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스크리닝’이라고 하는데 스크리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 약물들은 수 없이 많다.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심하거나 아니면 둘 다 이거나.

지금은 '극히 미미한 효과만 있다'라는 말이 결국 향암제로는 가치가 '없다'로 들리겠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래 결국 효과가 있다는 거네'라고 들렸을 것이다.

오래전 국내 유명 제약회사 개발부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일주일에 몇 번이고 ‘어디어디에 좋은 약초를 찾아냈다’ ‘어디어디 문헌에서 특효 처방을 알아냈으니 약으로 개발해 달라’는 식의 전화를 전국 각지에서 받았던 기억이 있다. 제약산업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 효과가 있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 약으로 개발하는 일이야말로 제약산업이 눈에 불을 켜고 하는 일이다. 구충제가 구충제로만 남아있는 데에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부 정보에 의하면 구충제 성분이 항암 (대사 칵테일) 요법에 활용된다는 이야기가 있고, 미국 모 제약사가 다시 항암테스트 중이라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치 있는 결과가 나왔다면 이미 그 회사의 주가에 반영되었을 것이고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을 것인데 아직 그런 이야기는 없다. 그리고 항암 대사 칵테일 요법은 하나의 약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약들을 섞어서 전문가의 통제(투약 양과 시간)하에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의 경우처럼 효과보다는 치명적 부작용이 먼저 나타난다. 특정 성분을 장기간 사용하면 어딘가에 탈이 난다. 그 개그맨은 간수치가 높아 중단했다고 한다. 암세포를 죽이려다 간세포를 죽인 것이다.

암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하는 데는 몇 가지 이론이 있다. 대표적으로 '체세포 돌연변이설(유전자 발암설)'과 '암 대사설(대사성 발암설)'이 있다. '체세포 돌연변이설'이 주류 이론이다. 대부분 병원에서는 체세포 돌연변이설에 따라서, 체세포의 돌연변이에 의해 생긴 (것으로 믿는) 암세포를 방사선이나 약물로서 죽이거나 수술로써 제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반면 '암 대사설'은 암세포의 에너지 대사는 정상세포의 에너지 대사와 다르다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에너지 대사 체계가 망가지면서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이되었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정상세포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다양한 것에서 에너지를 얻는데 반해 암세포는 포도당과 글루타민 등 극히 일부에서만 에너지를 얻는다. 결국 암세포는 포도당 등 극히 일부만을 먹이로 하여 생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암 대사 치료법은 암세포 대사에 관계하는 여러 약들을 섞어서(칵테일하여) 암세포를 대사적으로 굶겨 죽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전략은 암 대사설을 기반으로 식이 요법과 함께 진행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암 세포를 굶겨 죽이는 전략(암 대사치료)은 주류 치료법을 기본으로 하되 보완적으로 시행하며, 이 치료법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시행해온 일부 의사와 병의원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약들은 항생제, 소염진통제, 혈액응고 방지제, 당뇨약, 콜레스테롤약 등 일반적으로는 암치료제와는 무관한 약들(로 알려진 것들)이다. 이들 중 한 가지가 동물구충제이다. 동물구충제가 항암제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허가된 용도외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off label 용법’이라 한다. Label 즉, 설명서에 없는 사용법이란 뜻이다. 이렇게 통제 하에 제한적으로 이용되는 동물구충제의 항암 효과가 SNS를 통해 과장되어 특효약으로 무책임하게 퍼져나간 것이 이번 광풍의 맥락이다.

당뇨나 혈압 같은 대사성 질환은 단일한 발병 요인이 없다. 복합적이다.

암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이론이 있고 이런 이론들을 기반으로 한 치료법이 있다. 그런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와 환자가족의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존의 치료방법을 대신할 수 있는 획기적이고 기적적인 치료방법은 없으며, 대사치료라는 보완적인 방법을 모색하더라도 전문가의 지도와 통제 하에 진행되어야함을 잊지 말아야한다. 식이, 영양, 운동, 대사치료 등의 접근법이 주류 이론(치료법)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이번 항암 구충제와 같은 황당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을 것이며 환자들은 가능한 다양한 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제는 만성 비염에 먹을 거라며 구충제를 사러온 사람이 있었다. 폭풍은 아직 완전히 지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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