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잘 먹고 잘살고 권력 대물림할 때 항일 집안 결딴난 거꾸로 된 세상 고쳐야

공군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우리 땅에 들어서는 독립군 대장 유해를 보며 여러 감정이 겹친다. 밥술이나 먹고 산다고 으스대던 것이 우금 언젠데 나라 위해 몸 바쳐 싸우다 객사한 투사의 백골을 거두는 데 78년이나 걸렸더란 말인가. 영정으로 돌아오신 홍범도 장군은 흑백 초상만으로도 그 위의가 느껴진다. 군 창설 이후 숱하게 생산해내 주렁주렁 별을 달고 위세 부리던 같잖은 똥별들 품새와는 감히 견줄 수 없는 위엄이다. 그건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계백 등 전설적 장군의 위풍에서 맡아보던 우뚝 선 당당함이라.

'독립군'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추상은 나이가 들수록 실체적이고 장대하게 다가온다. 현실에 매여 산다는 것은 비겁해진다는 것이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물리적 절박함이 있고 챙기고 거두어야 하는 식솔들이 있다. 그것은 적은 이득에도 아등바등하게 하고 입바른 소리를 주저하게 하고 나쁜 법에 델까 오그라져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 눈만 껌뻑거리게 하고 비굴함과 수모를 견디게 하는 것이라. 그런 초라한 내 꼴에다 엄혹한 시절 독립투쟁에 목숨을 건 그들의 삶은 명징하게 대비된다. 정규군이 해체된 침탈당한 나라의 개인이 맨몸으로 제국 군대와 맞선다! 그 서슬 퍼런 기개를 어찌 몇 마디 번드르르한 말로써 칭송할 수 있겠는가.

▲ 홍창신 칼럼니스트
▲ 홍창신 칼럼니스트

 

'배따라기' '감자'를 쓴 김동인, '무정'을 쓴 이광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으로 시작되는 '사슴'을 쓴 노천명,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최남선, '레디메이드 인생'의 채만식, '혈의 누'를 쓴 이인직, '자유부인'의 정비석, 그리고 그 유명한 서정주. 내 청춘을 달뜨게 했던 그 매혹적인 문장의 귀재들이 모두 일제에 부역한 자들이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뿐인가. '고향의 봄'의 홍난파, '희망의 나라'로의 현제명, '선구자'의 조두남, 이흥렬 남인수 박시춘, 심지어 안익태는 일본군부와 나치의 협력자였고 애국가조차 불순한 냄새가 나는 과정을 거쳤다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미술계는 온전할까. 만 원짜리에 찍혀 밤낮으로 들여다보는 세종대왕을 그린 김기창, 율곡 신사임당 논개를 그린 김은호, 이순신 윤봉길 정약용을 그린 장우성, 종로의 충무공을 비롯한 도처에 우뚝 선 지사들의 동상을 빚고 다듬은 손들이 거의 부역자란다.

밤잠을 설치게 하던 빛나는 문장, 영혼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선율, 탄복하며 들여다봤던 그림을 남긴 근세의 천재들. 그들이 모두 부역의 대가로 얻은 밥으로 배를 불리고 권세를 누린 민족의 반역자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를 아연하게 하고 슬프게 한다. 임종국 선생의 평생을 바친 헌신이 아니었으면 그 또한 뉘 알았겠는가. 친일파들은 잘 먹고 잘살고 자식 교육도 잘 시켰다. 부를 세습하였으며 떠나며 남긴 꼼꼼한 인적 구성으로 대물림의 권력구조를 만들어 우리 속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다. 재벌급으로 번육한 신문사를 굴려 서로 '민족지'라 참칭하며 조상의 비행을 은폐 미화하며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반일 항일 했더니 집안은 결딴나고 자식들은 교육도 못 받고 빈민으로 떨어져 외려 조상을 원망하게 되는 거꾸로 된 세상이 이 나라의 '지사' 대접이었다. 이제라도 차곡차곡 되잡아야 한다. 그 후손들이 긍지를 느낄 수 있고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일에 국가가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홍범도 장군의 귀환이 시민사회에 그런 기운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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